"설사가 한 달째 계속된다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 아닌 '이 질환' 일 수도
반복되는 복통과 설사는 화장실을 수시로 드나들게 하고 집중력을 떨어뜨려 일상을 무너뜨린다. 이와 같은 만성 설사의 원인은 다양한데, 그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담즙산 흡수장애'다. 담즙산 흡수장애는 소장에서 담즙산이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대장으로 흘러가 만성 설사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하지만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증상이 비슷해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방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성 설사는 증상이 길어질수록 일상의 불편도 커지는 만큼, 무엇보다 조기에 원인을 찾아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즙산 흡수장애의 원인과 증상, 진단과 치료·예방법을 소화기내과 이경주 교수(한림대학교 동탄성심병원)와 함께 살펴본다.
▶ 관련기사
ㄴ 만성 설사 부르는 '담즙산 흡수장애'... 프로바이오틱스로 3주 만에 수치 개선
"세제가 기름때를 풀듯"... 지방 소화 돕는 담즙산, 대장까지 내려가면 설사 유발
담즙산은 흔히 '쓸개즙'이라 불리는 담즙의 주성분이다. 간에서 만들어져 쓸개(담낭)에 저장됐다가, 식사를 하면 소장 첫 부분인 십이지장으로 분비된다. 이경주 교수는 "담즙산은 우리 몸에서 주방세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라며 "세제가 기름때를 물에 잘 섞이게 하듯, 담즙산은 음식 속 지방을 잘게 풀어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역할 덕분에 기름에 녹는 비타민 a·d·e·k 같은 지용성 영양소가 흡수되는 데에도 담즙산은 필수적이다.
담즙산은 소화 과정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된다. 지방을 분해하는 데 쓰인 담즙산은 대부분 소장 끝부분에서 다시 흡수돼 간으로 돌아가 재사용된다. 담즙산 흡수장애는 이 재활용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흡수되지 못한 담즙산이 대장까지 내려가면 대장 벽을 자극해 장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고 장의 움직임을 빠르게 만든다.
그 결과 변이 묽어지고, 설사가 반복되며, 갑자기 강한 변의가 찾아와 참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 증상이 심해지는 일이 많고, 가스가 차거나 복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변이 노랗거나 초록빛을 띠기도 하며, 지방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대변이 기름져 보이기도 한다.
소장 손상부터 쓸개 수술까지... 담즙산 흡수장애 원인은?
담즙산 흡수장애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크론병이나 수술, 방사선 치료 등으로 담즙산을 다시 흡수하는 소장 끝부분이 손상된 경우다. 둘째는 특별한 원인 없이 간이 담즙산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드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셋째는 쓸개 제거 수술을 받았거나 만성 췌장염 같은 다른 질환이 있는 경우다. 쓸개 수술 후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 설사를 한다는 사람 중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담즙산 흡수장애의 증상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 염증성 장 질환 등과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는 일도 흔하다. 진단은 혈액검사, 대변검사, 대장내시경 등을 시행해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 질환 같은 다른 질환을 배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담즙산을 직접 측정하는 검사도 있지만 국내에서 이를 시행할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다.
이경주 교수는 "실제로는 다른 질환이 없음을 확인한 뒤 담즙산을 붙잡아 주는 약을 먹어보고, 설사 증상이 확실히 좋아지면 담즙산 흡수장애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일반적인 설사약이나 장 치료로 잘 낫지 않는 설사라면 담즙산 문제를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담즙산을 자석처럼 붙잡는 약으로 치료... 프로바이오틱스는 아직 기대 단계
담즙산 흡수장애의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대장으로 넘어간 담즙산을 붙잡아 변으로 내보내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이 치료를 진행하면, 많은 환자에서 설사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경주 교수는 "다만 가루약이라 먹기 불편하고 변비나 더부룩함이 생길 수 있으며, 다른 약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어 복용 시간에 간격을 두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이 약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치료 시작 전 담당 의사와 상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원인이 되는 질환이 있다면 그 치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최근에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를 활용해 담즙산 대사를 조절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구팀이 담즙산 흡수장애 환자 22명에게 8종 균주로 구성된 복합 프로바이오틱스를 3주간 복용하게 했더니, 설사를 일으키는 담즙산의 비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경주 교수는 "이 연구는 참여자가 20여 명으로 적고 기간도 3주로 짧아, 담즙산 흡수장애 치료에 프로바이오틱스를 활용하는 것은 아직은 기대 단계"라며 "설사 증상 자체가 좋아졌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고, 연구에 쓰인 특정 제품의 효과를 시중의 모든 프로바이오틱스에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기름진 음식 줄이고 조금씩 나눠 먹기... "한 달 이상 설사한다면 내원해야"
담즙산 흡수장애 증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름진 음식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담즙이 많이 분비되고, 그만큼 대장으로 넘어가는 담즙산도 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튀김이나 기름기 많은 고기 요리는 줄이고 굽거나 찌는 조리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식사는 한 번에 많이 먹기보다 조금씩 나눠 먹는 것이 좋으며, 음주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귀리, 바나나, 사과처럼 수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은 변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된다. 설사가 잦으면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므로 물도 충분히 마셔야 한다.
이경주 교수는 "무엇보다 설사가 한 달 이상 이어진다면 '원래 장이 약해서'라며 넘기지 말고 소화기내과에서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라며 "만성 설사는 참고 지내는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 하는 신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