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백신, 심장병 위험까지 낮춘다?... 옥스퍼드대 7만 명 분석
대상포진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 백신이 심장병과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정신과학교실 연구팀은 최신형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이 기존의 '생백신'을 맞은 사람보다 이후 7년간 심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9% 더 낮았다고 밝혔다.
대상포진은 어릴 때 수두를 일으켰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에서 재활성화되며 발생하는 질환이다. 국내외에서 60세 이상 성인에게 예방접종이 널리 권장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존 생백신보다 예방 효과가 뛰어난 재조합 백신(대표적으로 싱그릭스)이 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몇몇 관찰 연구에서 이 신형 백신이 심혈관 질환 위험까지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왔지만,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를 단순 비교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애초에 건강관리에 적극적인 사람이 백신도 더 잘 맞는 '건강한 접종자 편향'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편향을 피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썼다. 미국에서는 2017년 10월을 기점으로 재조합 백신이 생백신을 빠르게 대체했는데, 이렇게 정책과 무관하게 시기에 따라 저절로 백신 종류가 갈린 상황을 이용해 두 집단을 비교하는 '자연 실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연구팀은 미국 60여 개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 데이터베이스(trinetx)를 활용했다. 전환 시점 직전인 2017년 4~9월에 백신을 맞은 60세 이상 성인과 1년 뒤인 2018년 4~9월에 백신을 맞은 성인을 나이·성별·기저질환 등 83개 항목으로 매칭해 각각 3만 6,460명씩, 총 7만 2,920명을 비교 분석했다.
7년간 추적한 결과, 재조합 백신을 맞은 그룹은 생백신을 맞은 그룹보다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9% 낮았다. 세부적으로 보면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은 10%, 심부전 위험은 12% 낮았고 이 두 가지는 남녀 모두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허혈성 뇌졸중은 전체적으로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지만, 남성만 따로 보면 위험이 12% 낮았고,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 위험도 7% 낮게 나타났다. 반면 심근염, 말초동맥질환, 일과성 허혈 발작, 출혈성 뇌졸중에서는 두 그룹 간 차이가 없었다. 이런 보호 효과는 접종 후 처음 3.5년간 뚜렷하게 나타났다가, 이후 3.5년간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재조합 백신에 포함된 면역증강제가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을 일정 기간 조절하는 것이 심혈관 보호 효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as01은 염증 유발 물질인 인터루킨-6(il-6)에 대한 면역세포의 반응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il-6 억제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춘다는 근거도 있어 이런 기전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인만큼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으며, 백신 접종 시점 외에 측정되지 않은 다른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예방접종과 무관한 질환의 발생률이나 대조군으로 사용한 다른 백신 접종자의 심혈관 질환 발생률에서는 두 그룹 간 차이가 없어, 이러한 우려를 상당 부분 줄여준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이끈 옥스퍼드대학교 정신과학교실 폴 해리슨(paul j. harrison) 교수와 맥심 타케(maxime taquet) 박사는 "이번 결과는 이미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접종되는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이 대상포진 예방을 넘어 심혈관 건강에도 부가적인 이점을 줄 가능성을 시사한다"라며, "임상시험과 기전 연구를 통해 이 결과가 확인된다면 공중보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recombinant shingles vaccination and the risk of cardiovascular events: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 접종과 심혈관 사건 위험)는 2026년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