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포기하지 마세요"...생존 기간 높이는 신약으로 치료 돌파구 연다
췌장은 소화액 분비와 혈당 조절을 담당하는 중요한 장기지만, 등 쪽에 가까운 복부 깊숙이 자리해 이상 병변을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췌장암은 진행 속도가 빠르고 환자의 5년 생존율이 약 10%에 그쳐 오랜 기간 '절망의 암'으로 불려 왔다.
그런데 최근 췌장암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30년 가까이 '공략 불가'로 여겨졌던 'kras' 유전자 변이를 타격하는 표적 신약이 등장한 것이다. 환자 90% 이상에서 나타나는 이 변이를 직접 공략하게 되면서, 췌장암 치료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
소화기내과 임가람 교수(세브란스병원)는 "전신으로 전이된 4기 환자라도 항암치료를 통해 3~4년 이상 건강을 유지하는 사례가 있고, 표적치료와 부작용 보조요법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라며 췌장암 극복을 위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 교수와 함께 췌장암의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이유부터 새로운 치료 가능성까지 짚어봤다.
췌장암은 왜 발견이 늦은 경우가 많은가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췌장의 위치입니다. 췌장은 복부 안쪽 깊은 곳인 후복막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 많이 사용하는 복부 초음파만으로는 췌장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체를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복부 지방이 많거나 장이 췌장 앞을 가리고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ct나 mri 같은 추가 검사를 하기 전까지 병변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빠른 진행 속도입니다. 1년 전 ct 검사에서는 특별한 병변이 보이지 않았지만, 다음 검사에서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도 췌장암이 늦게 발견됐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 바로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얼마나 되나요?
보고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처음 진단받았을 때 바로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전체 췌장암 환자의 약 10~20%로 알려져 있습니다.
췌장 주변에는 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주요 혈관들이 지나갑니다. 췌장암은 발생 초기부터 이러한 혈관을 둘러싸거나 침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됐거나 주요 혈관을 광범위하게 침범했다면 수술하기 어렵습니다. 암의 위치와 주변 혈관 침범 정도, 다른 장기로의 전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수술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수술과 항암치료의 순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나요?
과거에는 가능하면 수술을 먼저 시행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지만, 이는 20~3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췌장암은 대동맥 주요 혈관을 둘러싸고 있는 경우가 많아 수술 가능 환자가 극소수입니다.
특히 췌장암은 진행이 워낙 빨라 영상 검사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 전이'가 이미 존재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ct나 mri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종양 크기가 최소 5mm, 즉 암세포가 약 10억 개 정도 모여 있어야만 영상에 잡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췌장암 수술은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췌장 머리 부분에 종양이 있다면 십이지장과 담도, 췌장 일부를 모두 절제해야 하므로 환자가 회복하는 데만 두 달가량 소요됩니다. 과거에는 이 회복 기간에 다발성 전이가 발생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선행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해 미세 전이를 통제하고, 암이 충분히 조절되었다고 판단될 때 기술적 절제 가능성을 다시 평가해 수술을 진행하는 추세입니다.
항암치료가 발전했는데도 췌장암의 치료 성적이 크게 좋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췌장암 환자분들이 특히 막막함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미국 보고에 따르면, 한 가지 항암제를 사용하던 1999년에는 생존율이 약 4~5%였고, 폴피리녹스와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 병용요법이 도입된 시기에는 약 6~7%였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도 5년 생존율은 약 10% 수준입니다. 치료법이 발전해 왔지만, 췌장암의 생존율 개선은 여전히 더딘 편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두꺼운 섬유조직입니다. 췌장암 주변에는 다른 암보다 섬유조직이 두껍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암세포가 주변의 기질세포에 영향을 미치면서 섬유화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꺼운 섬유조직은 항암제가 암세포까지 충분히 전달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면역세포 역시 섬유조직을 뚫고 암 조직 안쪽까지 들어가기 어려워집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췌장암이 주변에 '콘크리트 벽'을 만든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종양 주변 환경이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입니다.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빠르게 생긴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치료에 반응해 종양이 줄어들더라도, 일부 환자는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췌장암의 생물학적 특성이 치료 성적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섬유화된 조직을 뚫고 항암제를 전달할 방법은 없나요?
섬유화된 조직을 줄이거나 항암제가 암세포에 더 잘 도달하도록 만들기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돼 왔습니다. 방사선치료나 전기를 이용한 국소치료를 시행한 뒤 항암치료를 병행하는 방법 등도 시도됐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섬유조직의 장벽을 효과적으로 극복해 췌장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방법은 제한적입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암을 둘러싼 주변 환경까지 함께 공략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러 항암제를 함께 사용하는 병용 항암요법은 얼마나 효과가 있나요?
현재 췌장암 치료에는 여러 항암제를 함께 사용하는 병용 항암요법이 주로 활용됩니다. 대표적으로 '폴피리녹스'와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 병용요법이 있습니다.
병용요법은 한 가지 항암제만 사용하는 것보다 종양을 억제하고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기대할 수 있는 생존 기간의 연장은 대체로 수개월 정도이며, 약제를 함께 사용하는 만큼 부작용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 암의 진행 정도 등을 고려해 치료 효과와 부작용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항암 치료 시 탈모나 손발 저림 같은 부작용은 그냥 참아야 하나요?
부작용에 따라 의료진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가 다릅니다. 탈모는 치료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항암치료가 끝나면 대체로 머리카락이 다시 자랍니다.
손발 저림이나 골수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은 약물과 보조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증상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항암치료에 반응해 종양이 줄어들더라도 환자가 치료 독성을 견디기 어려워 더 이상 치료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작용을 무조건 참기보다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췌장암도 환자에게 맞는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나요?
췌장암에는 표적치료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동안 다양한 표적치료제가 개발되어 왔습니다. 다만 해당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는 비율이 1~5% 정도로 낮고, 국내 임상과 허가 기준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약제는 한두 가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췌장암 발생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kras' 유전자 변이를 겨냥한 치료제 개발이 고무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kras 돌연변이는 췌장암 환자의 90~95%에서 발견될 만큼 핵심적인 표적입니다.
1990년대부터 그 중요성이 알려졌음에도, 유전자 단백질 표면이 공처럼 매끄러워 약물이 결합할 부위가 없다는 이유로 30년 가까이 신약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일종의 '도그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10년 전 결합 부위가 발견되면서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이미 특정 kras 하위 변이(약 2% 비율)를 겨냥한 2가지 약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전체 ras 변이를 폭넓게 억제하는 '다라조나십(daraxonrasib)'이 임상 2·3상 연구에서 환자의 생존 기간을 2배가량 연장한다는 결과를 냈습니다.
올봄 발표된 이 결과에 학계의 기립박수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머지않아 진료실에서 췌장암을 공략할 강력한 무기로 도입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췌장암을 진단받고 막막함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췌장암을 진단받으면 생존율이나 예상 수명을 찾아본 뒤 절망한 상태로 진료실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새로운 표적치료제가 등장하고 있고 치료를 돕는 보조요법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같은 병기라도 환자마다 치료 반응이 다르므로, 단편적인 수치에 지레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의료진을 믿고 주변과 서로 격려하며 끝까지 치료를 이어가시길 당부드립니다.